책을 만들고 싶어서 쓴 글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읽고 썼습니다. 그저 읽고 썼을 뿐인데, 꿈이라고 느껴질 만큼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버릴까 봐 쓴 글들을 서둘러 파일링해 제본했습니다. 혹시라도 길을 잃으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지도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제본책이 『엄마의 육我휴직』의 초고가 되었습니다.
THE FIRST YEAR
직장 대신
도서관으로 출근하다
엄마가 되기 전에 선택한 일과 ‘엄마’라는 새로운 일 사이에서 갈등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답을 찾기 위해 육아휴직을 했고, 일터 대신 도서관으로 출근했습니다.
신화와 역사, 철학과 과학을 오가며 동서고금의 저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의 책에서 정답을 찾으려 했지만, 실제로 발견한 것은 이전까지 제대로 보지 못했던 제 삶이었습니다. 읽기는 다른 사람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었고, 쓰기는 그 세계를 통과해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는 일이었습니다.
그 1년 동안 쓴 기록은 육아의 해법이라기보다,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삶의 구조를 찾는 탐험일지에 가까웠습니다.
THE FIRST MAP
길을 잃을 때마다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지도
예상했던 대로 저는 수시로 이전의 삶으로 소환됐습니다. 익숙한 역할과 두려움, 해야 할 일들에 밀려 새로 발견한 감각을 잊어버리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제본해 둔 원고를 지도 삼아 더듬더듬 돌아왔습니다.
그 원고에는 ‘아이와 함께 천직을 누리는 삶’을 끊임없이 의심하던 한 사람의 질문과 실험이 담겨 있었습니다. 정확히 나와 같은 존재의 의심이 믿음이 되고, 불안이 평화가 되어가는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의심과 불안으로부터 빠져나와 있는 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회복의 과정이 거듭될 때마다 저는 조금씩 제가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딱 그만큼 편안하게 세상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FIFTEEN YEARS LATER
지도를 들고
삶을 탐험해 온 15년
그렇게 15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다섯 살이던 첫째는 성인이 되었고, 젖먹이였던 둘째도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육아와 살림이라는 현실의 현장에서 그때 발견한 질문에 스스로 답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제 돌아보니 그 지도는 한 시절의 감정적인 기록만은 아니었습니다. 나를 살리는 기쁨으로 사랑하는 존재들을 함께 살릴 수 있는지, 육兒와 육我 가운데 하나를 희생하지 않고 둘을 함께 살려낼 수 있는지를 다양한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검토한 기록이었습니다.
이렇게 살아온 저의 본업은 ‘살림’입니다. 저는 ‘살림’의 현장을 탐구하고 실험하고 발견하고 기록하고 되살리는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엄마의 육我휴직』은 그 긴 탐험의 첫 번째 종합 기록입니다.
THE RHYTHM OF BIRTH
1년의 기록에서
탄생의 리듬을 발견하다
이 여정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동안의 글들을 다시 읽으며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제가 새로운 삶을 열어낸 과정이 태아가 자라고 산모가 아이를 낳는 임신과 출산의 리듬과 놀랄 만큼 닮아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몸으로 낳은 아이들을 기르는 현장에서 영혼으로 낳은 아이를 함께 기르는 15년을 살아내며, 그 리듬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태아의 변화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엄마의 변화는 심리적 관점에서 살폈습니다. 수정의 순간에서 착상의 진통으로, 태동의 떨림에서 분리의 예감으로 이어지는 탄생의 구조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이 책의 목차는 단순히 원고를 열 부분으로 나눈 장치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던 가능성이 형태를 얻고 감각과 골격을 갖춘 뒤, 마침내 이전과 다른 세상을 열어내는 탄생의 리듬을 책이라는 물성 안에 겹겹이 새긴 유기적인 발생 지도입니다.
EDITING AS CREATION
글을 쓰는 일에서
책을 만드는 일까지
처음 해보는 인디자인 편집은 느리고 고된 일이었습니다. 전문가에게 넘겨야 할 일을 괜히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여러 번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글을 직접 지면에 얹어 흐름을 살피는 동안, 편집 역시 창작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문장이 어디에서 멈추고, 어떤 장면 뒤에 여백이 필요하며, 그 순간의 리듬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글을 오래 품고 살아온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영역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표지와 목차, 각 장을 여는 도비라, 종이와 책등까지 직접 결정하는 과정에서 원고와 함께 다시 한번 새롭게 태어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WHY THIS BOOK, NOW
왜 지금,
이 책이어야 하는가
15년 사이 엄마의 자기돌봄과 자아 찾기를 말하는 책과 안내자는 많아졌습니다. 굳이 저까지 하나를 더 보탤 이유를 찾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다 15년 전의 저를 닮은 한 엄마를 만났습니다. 아이를 사랑하지만 엄마라는 역할만으로 자신을 설명할 수 없고, 아이와 자신 가운데 하나를 포기하는 방식으로는 답을 찾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꼭 가야 하는 길이라면 지도와 안내자는 많을수록 좋습니다. 누군가는 그 가운데 자신에게 맞는 질문과 언어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모든 엄마를 위한 책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이 질문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한 사람에게라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면 책을 펴내는 과정에 필요한 수고를 아끼지 않을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이
사랑할 수 있는 나로 돌아오는 여행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책을 덮는 순간에는
저자의 길이 아니라,
독자 자신의 길로
한 걸음 더 깊어져 있기를 바랍니다.
이 글은 2026년 4월 아홉프레스와 진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출간 준비 과정에서 달라진 관점과 내용을 반영해 다시 구성했습니다.